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지워터 : 불타는 파도 (문단 편집) === 2막 4장[*1] === || 입수 최고급 장화 귤 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순간, 그레이브즈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내장이 끓어오르는 듯 분노에 가득 찬 소리. 몸 안의 모든 세포가 안간힘으로 외치는 소리. 하지만 눈앞의 밧줄에 정신을 모았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도, 끝없는 심연도 생각할 수 없었다. 눈 속에서 빛이 끊어질 듯 점멸하며 어지러운 무늬를 그렸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모든 게 흐릿해지고 있었다. 간신히 밧줄을 붙잡았을 때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러나 이내 손바닥이 쓸려 불에 덴 듯 화끈거려왔다. 참아야만 한다. 올가미 모양으로 묶인 밧줄을 타고 미끄러지며 매듭을 단단히 그러쥐었다. 손바닥의 열상 때문에 몸은 더욱 거세게 흔들렸다. 잠깐 동안 온갖 욕설을 되뇌며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아래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 암시를 걸며. 여기서 물로 떨어진다고 해도 죽을 리는 없었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다로 뛰어드느니 차라리 돌 바닥에 떨어지고 싶었다. 아마 온몸이 으스러지겠지. 그래도 물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할 것이다. 바닥 위로 단단한 철제 밧줄 한 쌍이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는 이쪽에서부터 본섬으로, 다른 하나는 본섬에서 이쪽으로 가는 밧줄이다. 빌지워터 사람들은 바다 괴물 고기를 이 밧줄에 매달아 시장으로 날랐다. 밧줄을 움직이는 장치가 굉음을 내며 고막을 찢을 듯 흔들렸다. 사나운 바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런 불길한 날에 잘 어울리는 바람이었다. 그때였다. 잔뜩 녹슨 집채만 한 양철통이 밧줄을 타고 삐걱거리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얼굴 가득 회심의 미소가 퍼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용물을 보기 전까지였다. 망할.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생선 내장이라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이 장화에 들인 돈이 대체 얼마였더라. 심해에서 잡아 올린 바다용 가죽이다. 거미줄로 짠 비단처럼 부드럽고 강철보다 튼튼하다. 똑같은 장화는 발로란 전체에 네 켤레도 안 되는데…… 젠장.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생선 내장이 출렁이는 통에 뛰어들었다. 장인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깃든 장화에 차가운 오물이 스며들었다. 아, 끔찍해. 창고에서부터 이게 무슨 꼴이야. 그래도 모자만은 아직 무사하니까. 그때, 그놈의 재수 옴 붙을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밧줄이 뚝 끊어졌다. 타고 있던 양철통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밧줄에서 풀려났다. 추락하는 순간은 마치 영원과 찰나가 뒤섞인 듯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나는 충격으로 튕겨 돌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모든 풍경이 거꾸로 뒤집혔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생선 내장과 함께. 몸을 지탱할 힘조차 없었지만 간신히 일어나 도망갈 길을 찾아야 했다. 갱플랭크의 수하들이 탄 조각배가 빠르게 다가왔다. 검은 깃발이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금방이라도 잡히고 말 것이었다. 현기증이 일었지만 기다시피 부두에 묶여 있는 작은 통통배를 향해 걸었다. 하지만 절반도 못 가 산탄이 날아왔다. 선체는 모래성처럼 단숨에 두 동강 나버리고 말았다. 잔해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며 주저앉았다.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뚝 끊어지며 맥이 탁 풀렸다. 내 몸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참고 겨우 숨을 들이쉬었다. 어느새 다가온 그레이브즈의 노여움 가득한 시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다리에서는 어떻게 내려온 거람. 뭐, 원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녀석이니까. “비싼 옷을 다 버려서 어쩌나?” 물에 빠진 생쥐 꼴인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씩 웃으며 하는 말이 겨우 그거라니. “언제 철들래?”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레이브즈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바닥에 총을 갈겼다. 파편이 튀었는지 정강이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제발 좀 들어 보……” “이제 듣는 건 때려치우기로 했어.” 목소리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게 한탕 하기로 해놓고 아무 말도 없이 내뺀 놈 얘기를 들어서 뭐해?” “아무 말도 없이? 내가 분명……” 다시 총탄이 날아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따위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놈들의 배도 그만큼 더 빨리 도착할 것이다. 팽팽하게 부푼 돛들이 불쑥 튀어나온 뼈처럼 보였다. “난 함께 탈출하려고 했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으니까.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건 너잖아, 이 자식아. 매번 그랬던 것처럼 너는 그때도 무식하게 밀어붙였다고!” 어느새 손안에는 한 장의 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레이브즈가 목소리를 높이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내가 너희는 뒤에서 지원만 해달라고 했지? 잘 끝내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평생 놀고먹을 정도로 벌어들일 수 있다고. 근데 도망쳤지. 나만 두고.” 해묵은 증오는 내가 알던 그레이브즈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 안에서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나는 달싹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 침도 삼킬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레이브즈의 어깨너머로 작은 빛이 예리하게 반짝였다. 장총인가? 그렇다면 갱플랭크의 부하들이 부두에 도착한 것이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그쪽을 향해 카드를 날렸다. 동시에 그레이브즈도 방아쇠를 당겼다. 카드는 그레이브즈의 등에 총을 겨눴던 갱플랭크의 부하를 쓰러뜨렸다. 내 뒤에서도 해적 한 놈이 털썩 고꾸라졌다. 한 손에는 날이 선 칼을 들고 있었다. 그레이브즈가 쏘지 않았다면 지금쯤 목은 내 몸에 붙어있지 않았을 거다. 카드를 날리지 않았다면 그레이브즈도 저 세상에 갔을 테고.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갱플랭크의 수하들이 괴성을 지르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머릿수가 너무 많아 정면으로 붙는다면 이길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항복할 그레이브즈가 아니었다. 산탄총을 치켜들어 방아쇠를 당겨댔다. 그러나 탄환이 떨어진 듯 빈 총신 소리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나는 아직 카드가 남아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카드 몇 장 던진다고 무슨 소용이겠는가. 반격할 수 있는 거리도 숫자도 아니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 물끄러미 시커먼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는 소리가 비웃음 소리처럼 귓전을 울렸다. 반면 그레이브즈는 해적 놈들처럼 괴성을 지르며 내달렸다. 옛날부터 저랬어. 그는 총구를 들어 맨 앞에서 뛰어오던 상대의 코를 박살냈다. 하지만 곧 개떼처럼 몰려온 놈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붙잡혔다. 놈들은 피를 뒤집어쓴 채 쓰러진 그레이브즈를 끌고 갔다. 나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일순간 우리를 소란스럽게 비웃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납덩이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심해에 다다른 돌덩이가 바닥의 모래를 뒤집어쓰면 이런 느낌일까. 안타깝게도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해적 놈들이 바닷길이 열리듯 양쪽으로 갈라섰다. 붉은 외투의 사내가 땅을 울리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갱플랭크였다. 가까이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연륜이 묻어나는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갈라진 땅처럼 새겨져 있었다. [[갱플랭크]]는 한 손에 [[귤]]을 들고 조각도로 천천히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신중한 손놀림이었다. 시큼 달큼한 냄새가 공중에 훅 끼쳤다. “네놈들……” 마침내 정적이 깨지고 야수가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가 바람을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뒤흔들었다. '''“뼈 공예라고, 혹시 들어본 적 있나?”'''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